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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을 뒤집은 2002년의 광기
붉은 함성의 에너지를
Mad 90으로 재해석하다



2002년 서울의 거리는 뜨거운 ‘광기’로
붉게 물들었습니다.그리고 24년이 흐른 2026년,
AIR MAX 90 Mercurial은 그때의 야성을 다시
거리로 소환합니다.

2002년의 강렬한 기억을 선명하게 남기고자
유니폼과 축구화를 집착하듯 수집하기 시작한
최호근.
2002년 길거리 응원에서 느낀 날것의 함성을
2026년 관객들이 열광하는 무대로 끌어와
폭발시키는 힙합 프로듀서 릴 모쉬핏.
세계 무대라는 거대한 벽에 끊임없이 부딪히며
스스로 한계를 깨부수고 있는 스케이터 강준이.

수집하고, 폭발시키고, 부딪히며 완성되는
세 사람의 교집합. 2002년 필드 위를 가로지르던
축구화의 헤리티지가 세 사람의 에어맥스 90에
자리하는 순간, 그 에너지는 더 이상 과거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Mad 90, 2002년 붉은 함성의 에너지를 재해석하다

어린 시절부터 축구를 많이 좋아했다고 들었어요. 2002 월드컵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죠. 평가전 때부터 우리나라 엄청 잘한다고 좋아하면서 봤어요. 축구 게임에서만 보던 유명한 플레이어들이 우리나라 선수들과 맞붙는 걸 보면서 신기해했던 기억도 납니다. 거리 응원도 나갔죠. 포르투갈전은 인천시청 앞 공원에서 응원하면서 봤고, 스페인전은 문학구장, 이탈리아전은 서울시청 앞에서 봤어요. 전국민이 입던 빨간색 티셔츠를 입고 페이스 페인팅까지 하고 응원했죠. 어딜 가든 길거리에서는 늘 월드컵 응원가가 나왔고, 경기 때는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함성이 터졌어요.

스포츠 경기나 공연 무대에서 소리가 주는 에너지를 비슷하게 느끼나요?


소리라는 게 사람을 굉장히 자극하고 흥분시키잖아요. 특히 사람들이 한꺼번에 지르는 함성은 전율을 일으켜요. 그게 열 명만 돼도 귀가 반응을 하게 되는데, 백 명, 천 명, 만 명 커질수록, 그 함성이 주는 날것의 에너지는 어마어마해지는 것 같아요. 골을 넣자마자 경기장에 수만 명의 함성이 터지는 걸 들으면, 그 소리 자체에 압도가 되거든요. 그런 에너지가 힙합과도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저도 그렇게 사람들이 흥분으로 가득 차는 분위기를 좋아해서, 음악을 만들 때도 사람들이 미칠 수 있는 걸 만들려고 하죠. 그래서 월드컵 때 느꼈던 그 압도적인 에너지를 지금은 공연장에서 느끼고 있어요.

Mad 90, 2002년 붉은 함성의 에너지를 재해석하다

응원하는 팀의 저지를 자주 입기도 하나요?


좋아하는 팀의 저지를 입는 건 자기표현이에요. 지금은 파리 생제르맹 FC(이하 PSG)를 응원하기 때문에 PSG 저지를 자주 입지만, 한 종류만 입는 건 아니에요. 저지는 한 장 한 장이 다 특별한 의미가 있거든요. 예를 들어 특정 스폰서 로고가 붙어 있는, 특정 우승컵을 들어 올렸을 때의, 내가 좋아하던 선수의 마킹이 되어 있는 유니폼을 소장하는 건, 그 스토리와 에너지를 간직하는 거니까요. 어떤 팀의 팬이 된다는 건 그 팀의 역사를 이해하고 몰입하면서 애정을 쏟는 것이기 때문에, 유니폼은 그때그때의 에너지와 추억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저지 스타일링에도 팁이 있을 것 같아요. 주로 어떻게 스타일링하시나요?


저는 저지를 머플러와 함께 스타일링 하는 걸 좋아합니다. 제가 옷 입을 때 항상 헤드피스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인데요. 머플러를 아예 얼굴이 안 보이게끔 두르고 저지를 입으면, 이게 마치 하나의 세트 같아 보이거든요. 그 대신 바지는 조금 더 화려한 걸 매치해서 단조롭지 않게 하는 거죠. 그렇게 통일된 느낌을 주면서도 포인트는 느껴지는 스타일링이 좋은 것 같습니다.



“애정이 담긴 헤리티지의 요소를 가져와서 현 세대의 에너지로 폭발시키는 것, 그게 바로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이거든요.”

‘AIR MAX 90 Mercurial’에서 어떤 공감대를 느끼나요?


머큐리얼 베이퍼와 에어맥스 90을 나란히 둔 모습을 보고 소름이 돋았어요. 애정이 담긴 헤리티지의 요소를 가져와서 현세대의 에너지로 폭발시키는 것, 그게 바로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이거든요. 저는 어린 시절 들었던 한국의 대중음악, 특히 한국 힙합에 애정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그걸 이 시대에 맞는 언어로 재해석한 음악들을 만들고 있어요. 24년 전 축구화의 헤리티지, 사람들의 에너지와 추억을 2026년의 에어맥스에 녹여냈다? 그냥 제 음악이네요. 릴 모쉬핏의 음악이 궁금하다고 하면, 이 신발을 보여주면 될 것 같아요.

2002년의 에너지를 전달받은 릴 모쉬핏의 다음 행보를 기대해도 될까요?


머큐리얼 베이퍼는 2002년 월드컵 우승자인 호나우두의 발에 있었던 신발이잖아요. 그 파격적인 헤어스타일과 여유 넘치는 세리머니가 여전히 잊혀지지 않아요. 그 에너지를 받은 제가 이제부터 대체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요. 우승자의 축구화가 깃든 신발을 제가 신었을 때, 새롭게 거머쥘 트로피는 어떤 것일지 기대가 됩니다.

Mad 90, 2002년 붉은 함성의 에너지를 재해석하다

2002년은 광란의 시대였잖아요. 그 시대를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추억을 하나 공유해 주실 수 있나요?


이탈리아전을 본 날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해요. 아파트에 살던 친척 집에 저희 가족 포함 일가친척들이 다 같이 모여서 TV로 봤어요. 그때 흐름을 완전히 뒤집었던 안정환 선수의 역전 골 순간은 그 장면뿐만 아니라 진동과 소리까지 다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아파트 모든 집집마다 지르는 함성 소리가 베란다로 다 들어오고, 실제로 아파트 자체가 진동으로 흔들거릴 정도였어요.

2002년이 최호근 님의 삶과 오버더피치의 시작에도 영향을 주었나요?


2002년은 과장이 아니라 한국 축구의 모든 걸 다 바꾸고 모든 걸 새로 만들어낸 해였습니다. 축구 저지 문화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예요. 나이키 매장에서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의 국가 대표팀 저지를 만날 수 있게 된 것도 2002년부터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사람들이 운동할 때 외에도 축구 저지를 입고 다니는 모습이 보이게 된 것도 그때가 거의 처음이니까요. 물론 일상 속에서 저지를 입는 것이 대중화되는 데는 한참이 걸렸지만요. 저는 학원 갈 때나 친구 만날 때나 늘 좋아하는 저지를 입었는데, 그걸 보고 “축구하다 왔니?” 같은 소리를 듣는 게 너무 싫었어요. 학창 시절에도 늘 그랬고, 연애할 때도 그랬어요. 그럴수록 그 인식을 바꿔보자는 욕심이 생겼고, 그게 오버더피치를 시작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Mad 90, 2002년 붉은 함성의 에너지를 재해석하다
Mad 90, 2002년 붉은 함성의 에너지를 재해석하다

어마어마한 컬렉션을 가지고 있는데, 계속해서 저지를 모으는 이유는 뭔가요?


2002년 월드컵에 대해 아쉬운 게 하나 있다면, 제가 그때 성인이 아니었다는 거예요. 제가 만약 그때 성인이었으면 죽을 때까지 기억에 남을 엄청난 추억들을 만들 수 있었을 것 같거든요. 그때는 정말 나라 전체가 축구 하나로 다들 미쳐 있었으니까요, 이제 다시는 그런 광경은 못 볼 것 같아요. 그래서 한편으로는 어릴 때의 기억들이라도 붙잡아두고 싶고, 회상하고 싶은 마음에 축구 저지나 축구화, 축구공 같은 걸 집착하듯 모으게 된 것 같네요. 결국 그 옷을 입고 부딪히며 경기를 했던 선수들, 그 옷을 입고 응원하던 사람들의 기억들이 저지 자체에 다 녹아 있고, 이걸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때와 연결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요.

실제로 호나우두 선수의 엄청난 팬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를 그렇게까지 좋아하는 이유는 뭔가요?


사실상 호나우두 선수가 지금의 저를 만들었어요. 2002년 우리나라 대표팀 저지보다 먼저 샀던 브라질 대표팀 저지가 제 시작점이니까요. 처음 그에게 반한 건 1998 월드컵 때였는데, 그때 퍼포먼스는 말이 안 될 만큼 센세이셔널했어요. 월드컵 끝난 뒤엔 부상을 당해서 2년 가까이 축구계에서 사라졌는데, 시련을 극복하고 2002년 월드컵 우승에 득점왕까지 했죠. 그 플레이 자체의 매력에 시련을 극복한 서사까지 그 모든 게 너무나 멋있었어요. 그래서 그가 신던 머큐리얼 베이퍼를 너무나 사고 싶었지만, 어릴 땐 도저히 살 수 없었죠.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꿈의 축구화이자 동경의 대상이 된 것 같아요. 결국 성인이 되어 돈을 벌고 여유가 조금 생겼을 때 호나우두가 2002년 신은 머큐리얼 베이퍼 두 컬러웨이를 가장 먼저 사게 됐죠.



“그때는 정말 나라 전체가 축구 하나로 다들 미쳐 있었으니까요, 이제 다시는 그런 광경은 못 볼 것 같아요.”

Mad 90, 2002년 붉은 함성의 에너지를 재해석하다
Mad 90, 2002년 붉은 함성의 에너지를 재해석하다

AIR MAX 90 Mercurial을 실제로 본 감상은 어떤가요?


머큐리얼 베이퍼의 에너지가 제대로 이식되어 있다고 느껴집니다. 가장 아이코닉한 OG 컬러웨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건, 특정 선수보다는 이 모델과 그 시대 자체에 대한 찬사를 담은 선택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디자인에서도 아이코닉한 물결 무늬 음각 디테일 등이 그대로 잘 표현돼 있더라고요. 또, 축구 문화에서 이렇게 설포가 접히는 클래식 축구화는 굉장히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요소인데요. 원래 접혀서 나온 게 아니라, 이 축구화의 매력을 아는 사람들이 일부러 접어서 신던 문화에서 온 거거든요. 그 설포의 디테일을 반영했다는 점에서도 축구 문화를 이해하고 만들었다는 진정성이 느껴졌어요.

2002 월드컵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에게 이 에어맥스 90은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될까요?


제가 어릴 때 머큐리얼 베이퍼를 가지지 못했던 것, 2002 월드컵을 성인으로서 즐기지 못했던 것이 더 큰 동경을 불러왔잖아요. 마찬가지로 어린 축구 팬 분들에게는 한국 축구 역사의 분기점이라고 일컬어지는 2002년이 막연히 경험하지 못한 동경의 대상이 될 수도 있을 거라고 봐요. 그런 의미에서 한 시대를 상징하는 축구화를 지금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AIR MAX 90 Mercurial을 소장하고 신는 건, 2002년의 에너지를 일상에서 공유하고, 그 시대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Mad 90, 2002년 붉은 함성의 에너지를 재해석하다

2002 월드컵은 태어나기도 한참 전의 일입니다. 영상을 봤더니 어떤 기분이 드나요?


2002 월드컵 영상을 제대로 본 건 이번이 처음인데요. 이렇게까지 제가 대회 나간 것처럼 흥분하면서 스포츠를 본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길거리에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모여서 응원하는 모습이나, 약체로 평가받던 우리나라 선수들이 극적으로 이기고 올라가는 모습이나, 이런 것들을 보면서 계속 소름이 돋았어요. 저도 한 번쯤은 저런 함성을 경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무도 가본 적 없는 세계 무대에 도전하는 모습에서 공감대가 느껴지기도 하나요?


기대받지 못하는 도전자라는 게 제 모습과 겹쳐 보이기도 했어요. 2023년 처음 아마추어 세계 대회 ‘탬파 암’에 출전했을 때는 사람들의 기대가 전혀 없었거든요. 그때 실제로 저도 전 세계 스케이터들의 퍼포먼스를 눈앞에서 보니까 벽이 느껴지기도 했는데요. 부딪히고 구르다 보면 처음엔 좌절감을 느끼다가, 점점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나요. 그러다가 끝내 나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죠. 실제로 막상 해보면 별거 아니거든요. 마음만 먹으면 다 할 수 있는 거고, 자기 잠재력을 억누르는 건 결국 자기 자신이란 걸 깨닫게 되죠. 선수분들도 분명히 경기를 하면서 그런 걸 느끼지 않았을까 싶어요.

Mad 90, 2002년 붉은 함성의 에너지를 재해석하다
Mad 90, 2002년 붉은 함성의 에너지를 재해석하다

실제로 ‘탬파 암’이나 최근 ‘SLS’ 등 어마어마한 세계대회에서 우승 기록을 세웠잖아요. 위기는 없었나요?


2024년 ‘탬파 암’에서 1, 2차 시기를 모두 실패했을 때가 가장 큰 위기였죠. 저는 지금까지도 그 영상을 못 보겠어요. 결국 마지막 시도에 퍼펙트 런을 해서 우승을 따냈지만, 그 당시 감정을 너무 잘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생각만 해도 떨리거든요. 그때 한 일본 선수가 거의 우승을 확정시켜 놓은 거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는데, 제가 그 흐름을 완전히 뒤집고 드라마를 쓰는 상황이었죠. 저도 울었고 보던 사람들도 많이 울었다고 하더라고요.

유럽 국가 스케이터들은 축구 저지를 입고 많이 탄다고 하던데 실제로 그런가요?


축구 저지가 디자인도 예쁘지만, 통풍 잘 되고, 땀도 잘 마르고, 부딪히고 굴러도 튼튼해서 스케이터들이 입기에 굉장히 좋은 옷이거든요. 그래서 유럽 스케이터들은 자기 연고지 팀이나 응원하는 팀 유니폼 저지를 많이 입고 타더라고요. 이탈리아 스케이터들이 인터 밀란이나 AC 밀란 저지를 입고 타는 것도 본 적이 있어요. 저지가 바람에 펄럭이는 모습이 멋있더라고요. 저는 아직까지 저지를 입고 탄 적은 없는데, 이번 영상에서 느낀 에너지가 너무 강렬해서, 한번 입어보려 합니다.



“2032년이 되면 스케이트보드계의 역사가 많이 바뀌어 있을 겁니다. 제가 바꿀 거니까요.”

Mad 90, 2002년 붉은 함성의 에너지를 재해석하다
Mad 90, 2002년 붉은 함성의 에너지를 재해석하다

다음 계획이나 목표는 무엇인가요?


현시점의 목표는 일단 아시안게임과 LA 올림픽 금메달입니다. 올가을 열리는 2026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고, 연말에 있을 SLS 슈퍼크라운(SLS 우승자 등 최상위 스케이터들만 참여하는 대회)에서 1등을 한 뒤에, 여러 포인트 대회들도 잘 치러서 ‘2028 LA 올림픽’에 출전하고, 그 올림픽에서 금메달까지 따는 계획입니다.

AIR MAX 90 Mercurial처럼, 강준이 선수의 에너지를 전달하는 신발도 기대할 수 있을까요?


AIR MAX 90 Mercurial에서는 그 시대의 에너지가 느껴집니다. 원래 한 시대의 강렬한 에너지는 시간이 지나도 기억되잖아요. 폴 로드리게스라는 전설적인 스케이터가 있는데, 그분이 21년 전에 나이키와 컬래버레이션해서 만든 P-Rod라는 스니커가 작년에 10년 만에 재출시돼서 스케이터들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됐거든요. 저도 2032년쯤에는 그런 저만의 시그니처 신발을 만들고 싶어요. 머큐리얼 베이퍼가 2002년 한국 축구의 흐름을 뒤집은 에너지를 상징하는 신발이라면, 제 시그니처 신발은 2032년 스케이트보드 신의 역사를 뒤바꾼 에너지를 상징하는 신발로서 20년쯤 지나 다양한 방식으로 재해석되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실제로 2032년이 되면 스케이트보드계의 역사가 많이 바뀌어 있을 겁니다. 제가 바꿀 거니까요.

흐름을 뒤집은 2002년의 광기
붉은 함성의 에너지를 Mad 90으로 재해석하다



2002년 서울의 거리는 뜨거운 ‘광기’로 붉게 물들었습니다.
그리고 24년이 흐른 2026년, AIR MAX 90 Mercurial은 그때의 야성을 다시 거리로 소환합니다.

2002년의 강렬한 기억을 선명하게 남기고자 유니폼과 축구화를 집착하듯 수집하기 시작한 최호근.
2002년 길거리 응원에서 느낀 날것의 함성을 2026년 관객들이 열광하는 무대로 끌어와 폭발시키는 힙합 프로듀서 릴 모쉬핏.
세계 무대라는 거대한 벽에 끊임없이 부딪히며 스스로 한계를 깨부수고 있는 스케이터 강준이.

수집하고, 폭발시키고, 부딪히며 완성되는 세 사람의 교집합.
2002년 필드 위를 가로지르던 축구화의 헤리티지가 세 사람의 에어맥스 90에 자리하는 순간,
그 에너지는 더 이상 과거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Mad 90, 2002년 붉은 함성의 에너지를 재해석하다

어린 시절부터 축구를 많이 좋아했다고 들었어요. 2002 월드컵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죠. 평가전 때부터 우리나라 엄청 잘한다고 좋아하면서 봤어요. 축구 게임에서만 보던 유명한 플레이어들이 우리나라 선수들과 맞붙는 걸 보면서 신기해했던 기억도 납니다. 거리 응원도 나갔죠. 포르투갈전은 인천시청 앞 공원에서 응원하면서 봤고, 스페인전은 문학구장, 이탈리아전은 서울시청 앞에서 봤어요. 전국민이 입던 빨간색 티셔츠를 입고 페이스 페인팅까지 하고 응원했죠. 어딜 가든 길거리에서는 늘 월드컵 응원가가 나왔고, 경기 때는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함성이 터졌어요.

스포츠 경기나 공연 무대에서 소리가 주는 에너지를 비슷하게 느끼나요?


소리라는 게 사람을 굉장히 자극하고 흥분시키잖아요. 특히 사람들이 한꺼번에 지르는 함성은 전율을 일으켜요. 그게 열 명만 돼도 귀가 반응을 하게 되는데, 백 명, 천 명, 만 명 커질수록, 그 함성이 주는 날것의 에너지는 어마어마해지는 것 같아요. 골을 넣자마자 경기장에 수만 명의 함성이 터지는 걸 들으면, 그 소리 자체에 압도가 되거든요. 그런 에너지가 힙합과도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저도 그렇게 사람들이 흥분으로 가득 차는 분위기를 좋아해서, 음악을 만들 때도 사람들이 미칠 수 있는 걸 만들려고 하죠. 그래서 월드컵 때 느꼈던 그 압도적인 에너지를 지금은 공연장에서 느끼고 있어요.

Mad 90, 2002년 붉은 함성의 에너지를 재해석하다

응원하는 팀의 저지를 자주 입기도 하나요?


좋아하는 팀의 저지를 입는 건 자기표현이에요. 지금은 파리 생제르맹 FC(이하 PSG)를 응원하기 때문에 PSG 저지를 자주 입지만, 한 종류만 입는 건 아니에요. 저지는 한 장 한 장이 다 특별한 의미가 있거든요. 예를 들어 특정 스폰서 로고가 붙어 있는, 특정 우승컵을 들어 올렸을 때의, 내가 좋아하던 선수의 마킹이 되어 있는 유니폼을 소장하는 건, 그 스토리와 에너지를 간직하는 거니까요. 어떤 팀의 팬이 된다는 건 그 팀의 역사를 이해하고 몰입하면서 애정을 쏟는 것이기 때문에, 유니폼은 그때그때의 에너지와 추억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저지 스타일링에도 팁이 있을 것 같아요. 주로 어떻게 스타일링하시나요?


저는 저지를 머플러와 함께 스타일링 하는 걸 좋아합니다. 제가 옷 입을 때 항상 헤드피스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인데요. 머플러를 아예 얼굴이 안 보이게끔 두르고 저지를 입으면, 이게 마치 하나의 세트 같아 보이거든요. 그 대신 바지는 조금 더 화려한 걸 매치해서 단조롭지 않게 하는 거죠. 그렇게 통일된 느낌을 주면서도 포인트는 느껴지는 스타일링이 좋은 것 같습니다.

“애정이 담긴 헤리티지의 요소를 가져와서 현세대의 에너지로 폭발시키는 것, 그게 바로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이거든요.”

Mad 90, 2002년 붉은 함성의 에너지를 재해석하다

‘AIR MAX 90 Mercurial’에서 어떤 공감대를 느끼나요?


머큐리얼 베이퍼와 에어맥스 90을 나란히 둔 모습을 보고 소름이 돋았어요. 애정이 담긴 헤리티지의 요소를 가져와서 현세대의 에너지로 폭발시키는 것, 그게 바로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이거든요. 저는 어린 시절 들었던 한국의 대중음악, 특히 한국 힙합에 애정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그걸 이 시대에 맞는 언어로 재해석한 음악들을 만들고 있어요. 24년 전 축구화의 헤리티지, 사람들의 에너지와 추억을 2026년의 에어맥스에 녹여냈다? 그냥 제 음악이네요. 릴 모쉬핏의 음악이 궁금하다고 하면, 이 신발을 보여주면 될 것 같아요.

2002년의 에너지를 전달받은 릴 모쉬핏의 다음 행보를 기대해도 될까요?


머큐리얼 베이퍼는 2002년 월드컵 우승자인 호나우두의 발에 있었던 신발이잖아요. 그 파격적인 헤어스타일과 여유 넘치는 세리머니가 여전히 잊혀지지 않아요. 그 에너지를 받은 제가 이제부터 대체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요. 우승자의 축구화가 깃든 신발을 제가 신었을 때, 새롭게 거머쥘 트로피는 어떤 것일지 기대가 됩니다.

Mad 90, 2002년 붉은 함성의 에너지를 재해석하다

2002년은 광란의 시대였잖아요. 그 시대를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추억을 하나 공유해 주실 수 있나요?


이탈리아전을 본 날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해요. 아파트에 살던 친척 집에 저희 가족 포함 일가친척들이 다 같이 모여서 TV로 봤어요. 그때 흐름을 완전히 뒤집었던 안정환 선수의 역전 골 순간은 그 장면뿐만 아니라 진동과 소리까지 다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아파트 모든 집집마다 지르는 함성 소리가 베란다로 다 들어오고, 실제로 아파트 자체가 진동으로 흔들거릴 정도였어요.

2002년이 최호근 님의 삶과 오버더피치의 시작에도 영향을 주었나요?


2002년은 과장이 아니라 한국 축구의 모든 걸 다 바꾸고 모든 걸 새로 만들어낸 해였습니다. 축구 저지 문화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예요. 나이키 매장에서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의 국가 대표팀 저지를 만날 수 있게 된 것도 2002년부터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사람들이 운동할 때 외에도 축구 저지를 입고 다니는 모습이 보이게 된 것도 그때가 거의 처음이니까요. 물론 일상 속에서 저지를 입는 것이 대중화되는 데는 한참이 걸렸지만요. 저는 학원 갈 때나 친구 만날 때나 늘 좋아하는 저지를 입었는데, 그걸 보고 “축구하다 왔니?” 같은 소리를 듣는 게 너무 싫었어요. 학창 시절에도 늘 그랬고, 연애할 때도 그랬어요. 그럴수록 그 인식을 바꿔보자는 욕심이 생겼고, 그게 오버더피치를 시작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Mad 90, 2002년 붉은 함성의 에너지를 재해석하다

어마어마한 컬렉션을 가지고 있는데, 계속해서 저지를 모으는 이유는 뭔가요?


2002년 월드컵에 대해 아쉬운 게 하나 있다면, 제가 그때 성인이 아니었다는 거예요. 제가 만약 그때 성인이었으면 죽을 때까지 기억에 남을 엄청난 추억들을 만들 수 있었을 것 같거든요. 그때는 정말 나라 전체가 축구 하나로 다들 미쳐 있었으니까요, 이제 다시는 그런 광경은 못 볼 것 같아요. 그래서 한편으로는 어릴 때의 기억들이라도 붙잡아두고 싶고, 회상하고 싶은 마음에 축구 저지나 축구화, 축구공 같은 걸 집착하듯 모으게 된 것 같네요. 결국 그 옷을 입고 부딪히며 경기를 했던 선수들, 그 옷을 입고 응원하던 사람들의 기억들이 저지 자체에 다 녹아 있고, 이걸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때와 연결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요.

실제로 호나우두 선수의 엄청난 팬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를 그렇게까지 좋아하는 이유는 뭔가요?


사실상 호나우두 선수가 지금의 저를 만들었어요. 2002년 우리나라 대표팀 저지보다 먼저 샀던 브라질 대표팀 저지가 제 시작점이니까요. 처음 그에게 반한 건 1998 월드컵 때였는데, 그때 퍼포먼스는 말이 안 될 만큼 센세이셔널했어요. 월드컵 끝난 뒤엔 부상을 당해서 2년 가까이 축구계에서 사라졌는데, 시련을 극복하고 2002년 월드컵 우승에 득점왕까지 했죠. 그 플레이 자체의 매력에 시련을 극복한 서사까지 그 모든 게 너무나 멋있었어요. 그래서 그가 신던 머큐리얼 베이퍼를 너무나 사고 싶었지만, 어릴 땐 도저히 살 수 없었죠.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꿈의 축구화이자 동경의 대상이 된 것 같아요. 결국 성인이 되어 돈을 벌고 여유가 조금 생겼을 때 호나우두가 2002년 신은 머큐리얼 베이퍼 두 컬러웨이를 가장 먼저 사게 됐죠.

“그때는 정말 나라 전체가 축구 하나로 다들 미쳐 있었으니까요, 이제 다시는 그런 광경은 못 볼 것 같아요.”

Mad 90, 2002년 붉은 함성의 에너지를 재해석하다,    AIR MAX 90 Mercurial을 실제로 본 감상은 어떤가요?

AIR MAX 90 Mercurial을 실제로 본 감상은 어떤가요?

머큐리얼 베이퍼의 에너지가 제대로 이식되어 있다고 느껴집니다. 가장 아이코닉한 OG 컬러웨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건, 특정 선수보다는 이 모델과 그 시대 자체에 대한 찬사를 담은 선택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디자인에서도 아이코닉한 물결무늬 음각 디테일 등이 그대로 잘 표현돼 있더라고요. 또, 축구
문화에서 이렇게 설포가 접히는 클래식 축구화는 굉장히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요소인데요. 원래 접혀서 나온 게 아니라, 이 축구화의 매력을 아는 사람들이 일부러 접어서 신던 문화에서 온 거거든요. 그 설포의 디테일을 반영했다는 점에서도 축구 문화를 이해하고 만들었다는 진정성이 느껴졌어요.

Mad 90, 2002년 붉은 함성의 에너지를 재해석하다
Mad 90, 2002년 붉은 함성의 에너지를 재해석하다
Mad 90, 2002년 붉은 함성의 에너지를 재해석하다, 2002 월드컵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에게 이 에어맥스 90은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될까요?

2002 월드컵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에게 이 에어맥스 90은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될까요?

제가 어릴 때 머큐리얼 베이퍼를 가지지 못했던 것, 2002 월드컵을 성인으로서 즐기지 못했던 것이 더 큰 동경을 불러왔잖아요. 마찬가지로 어린 축구 팬 분들에게는 한국 축구 역사의 분기점이라고 일컬어지는 2002년이 막연히 경험하지 못한 동경의 대상이 될 수도 있을 거라고 봐요. 그런 의미에서 한 시대를 상징하는 축구화를 지금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AIR MAX 90 Mercurial을 소장하고 신는 건, 2002년의 에너지를 일상에서 공유하고, 그 시대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Mad 90, 2002년 붉은 함성의 에너지를 재해석하다

2002 월드컵은 태어나기도 한참 전의 일입니다. 영상을 봤더니 어떤 기분이 드나요?


2002 월드컵 영상을 제대로 본 건 이번이 처음인데요. 이렇게까지 제가 대회 나간 것처럼 흥분하면서 스포츠를 본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길거리에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모여서 응원하는 모습이나, 약체로 평가받던 우리나라 선수들이 극적으로 이기고 올라가는 모습이나, 이런 것들을 보면서 계속 소름이 돋았어요. 저도 한 번쯤은 저런 함성을 경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무도 가본 적 없는 세계 무대에 도전하는 모습에서 공감대가 느껴지기도 하나요?


기대받지 못하는 도전자라는 게 제 모습과 겹쳐 보이기도 했어요. 2023년 처음 아마추어 세계 대회 ‘탬파 암’에 출전했을 때는 사람들의 기대가 전혀 없었거든요. 그때 실제로 저도 전 세계 스케이터들의 퍼포먼스를 눈앞에서 보니까 벽이 느껴지기도 했는데요. 부딪히고 구르다 보면 처음엔 좌절감을 느끼다가, 점점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나요. 그러다가 끝내 나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죠. 실제로 막상 해보면 별거 아니거든요. 마음만 먹으면 다 할 수 있는 거고, 자기 잠재력을 억누르는 건 결국 자기 자신이란 걸 깨닫게 되죠. 선수분들도 분명히 경기를 하면서 그런 걸 느끼지 않았을까 싶어요.

Mad 90, 2002년 붉은 함성의 에너지를 재해석하다

실제로 ‘탬파 암’이나 최근 ‘SLS’ 등 어마어마한 세계대회에서 우승 기록을 세웠잖아요. 위기는 없었나요?


2024년 ‘탬파 암’에서 1, 2차 시기를 모두 실패했을 때가 가장 큰 위기였죠. 저는 지금까지도 그 영상을 못 보겠어요. 결국 마지막 시도에 퍼펙트 런을 해서 우승을 따냈지만, 그 당시 감정을 너무 잘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생각만 해도 떨리거든요. 그때 한 일본 선수가 거의 우승을 확정시켜 놓은 거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는데, 제가 그 흐름을 완전히 뒤집고 드라마를 쓰는 상황이었죠. 저도 울었고 보던 사람들도 많이 울었다고 하더라고요.

유럽 국가 스케이터들은 축구 저지를 입고 많이 탄다고 하던데 실제로 그런가요?


축구 저지가 디자인도 예쁘지만, 통풍 잘 되고, 땀도 잘 마르고, 부딪히고 굴러도 튼튼해서 스케이터들이 입기에 굉장히 좋은 옷이거든요. 그래서 유럽 스케이터들은 자기 연고지 팀이나 응원하는 팀 유니폼 저지를 많이 입고 타더라고요. 이탈리아 스케이터들이 인터 밀란이나 AC 밀란 저지를 입고 타는 것도 본 적이 있어요. 저지가 바람에 펄럭이는 모습이 멋있더라고요. 저는 아직까지 저지를 입고 탄 적은 없는데, 이번 영상에서 느낀 에너지가 너무 강렬해서, 한번 입어보려 합니다.

“2032년이 되면 스케이트보드계의 역사가 많이 바뀌어 있을 겁니다. 제가 바꿀 거니까요.”

Mad 90, 2002년 붉은 함성의 에너지를 재해석하다
Mad 90, 2002년 붉은 함성의 에너지를 재해석하다

다음 계획이나 목표는 무엇인가요?


현시점의 목표는 일단 아시안게임과 LA 올림픽 금메달입니다. 올가을 열리는 2026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고, 연말에 있을 SLS 슈퍼크라운(SLS 우승자 등 최상위 스케이터들만 참여하는 대회)에서 1등을 한 뒤에, 여러 포인트 대회들도 잘 치러서 ‘2028 LA 올림픽’에 출전하고, 그 올림픽에서 금메달까지 따는 계획입니다.

AIR MAX 90 Mercurial처럼, 강준이 선수의 에너지를 전달하는 신발도 기대할 수 있을까요?


AIR MAX 90 Mercurial에서는 그 시대의 에너지가 느껴집니다. 원래 한 시대의 강렬한 에너지는 시간이 지나도 기억되잖아요. 폴 로드리게스라는 전설적인 스케이터가 있는데, 그분이 21년 전에 나이키와 컬래버레이션해서 만든 P-Rod라는 스니커가 작년에 10년 만에 재출시돼서 스케이터들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됐거든요. 저도 2032년쯤에는 그런 저만의 시그니처 신발을 만들고 싶어요. 머큐리얼 베이퍼가 2002년 한국 축구의 흐름을 뒤집은 에너지를 상징하는 신발이라면, 제 시그니처 신발은 2032년 스케이트보드 신의 역사를 뒤바꾼 에너지를 상징하는 신발로서 20년쯤 지나 다양한 방식으로 재해석되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실제로 2032년이 되면 스케이트보드계의 역사가 많이 바뀌어 있을 겁니다. 제가 바꿀 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