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이어지는 위대한 유산
나이키 아카이브 팀
1978년 토요일 밤, 여성 계주 대표팀 타이거벨스는 800m 릴레이 경주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팀의 역사적인 순간이자 나이키 사상 최초의 세계 기록이었습니다. 물론 이는 육상 선수들이 남긴 찬란한 유산 중 일부에 불과합니다. 탁월한 퍼포먼스의 시대에서 보다 포용적인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육상 선수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1978년 2월 어느 날 밤, HBCU 테네시 주립대학교 여성 계주 대표팀 타이거벨스는 실내 800m 경주에서 1분 38초 5의 기록으로 세계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이 경기를 완주한 팀은 데보라 존스, 브렌다 무어헤드, 챈드라 치즈보로, 어네스틴 데이비스로 모두 흑인으로 구성된 팀입니다. 이 팀은 나이키가 후원하는 대학 팀과 프로 팀을 통틀어 최초의 세계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유서 깊은 흑인 대학이지만 규모가 작고 자금이 부족했던 학교에서 세계 신기록이 탄생했다는 사실은 단순한 승리 그 이상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성취는 타이거벨스의 위대한 업적 중 일부일 뿐입니다. 이들은 타이틀 나인(성차별 금지법) 이전 시대의 스포츠 분야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했을 뿐만 아니라 시민 평등권과 모든 여성 운동선수를 대표하는 사회 운동 분야에서도 업적을 남겼습니다.
세계 기록을 세운 계주 대표팀, TSU 1978년 졸업 앨범에서 발췌
역사로 남은 업적
타이거벨스 소속이었던 마사 왓슨은 2021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타이거벨스는 스포츠 관점에서도, 흑인 여성의 관점에서도 역사상 가장 특별한 존재 중 하나로 꼽을 수 있을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60년대 후반에 타이거벨스에서 활약한 왓슨은 올림픽에 4회 연속 출전한 끝에 1987년 미국 육상 명예의 전당에 올랐습니다.
타이거벨스는 1950년 초, ‘타이거벨스의 어머니’라 불리는 매 패그스 스타와 에드 템플 코치에 의해 탄생했습니다.
패그스 스타는 20살의 나이에 세계 무대 4x100m 계주 종목에 출전해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그 직후 템플 코치는 테네시 주립대학교(TSU)에서 자신이 새로 시작한 육상 프로그램에 그녀를 영입했습니다. 여성 스포츠 장학금이 존재하지 않던 타이틀 나인(성차별 금지법) 이전 시대였음에도 말이죠. 패그스 스타의 뒤를 이어 테네시 출신이자 육상 아이콘인 윌마 루돌프도 테네시 주립대학교에 합류했습니다. 루돌프는 1960년 올림픽에 출전해 금메달을 3개나 획득한 최초의 여성이라는 영예를 안게 됩니다.
패그스 스타와 루돌프 두 여성 덕분에 테네시 주립대학교는 스포츠 분야에서 독보적인 성과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플로렌스 그리피스 조이너가 풀 메이크업을 하고 달린 첫 선수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우리가 먼저였죠!”
챈드라 치즈보로
“너희는 황소처럼 달릴 수는 있지만, 여우처럼 보일 거란다.” - 에드 템플 코치
이러한 성과는 타이거벨스 프로그램이 만들어낸 변화의 일부에 불과했습니다. 템플의 목표는 스포츠와 교육을 결합하여 학생들의 사회적 지위를 상승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었고, 타이거벨스를 기점으로 폭넓은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냈습니다. 템플은 미국 육상계에 몸담으며 40명의 여성 올림픽 대표 선수를 코칭 했고 이들은 모두 대학 학위를 받았습니다.
타이거벨스 선수 출신 챈드라 치즈보로는 나이키의 팟캐스트에서 “저에게 에드 템플은 육상계의 거장이었습니다. 그는 여성 육상 선수들을 위해 기회의 문을 열어주셨죠.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고, 훌륭한 인격을 가진 분이셨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템플 코치에게 배운 것은 교육의 중요성이었습니다. 기회의 문을 여는 것은 육상이지만, 문을 계속 열어둘 수 있는 것은 교육이라고 언제나 말씀하셨죠.”라고 덧붙였습니다. 시간이 흐른 후 치즈보로는 1994년에 TSU의 수석 코치로 부임하였고, 그 후 여성 및 남성 육상부 책임자가 되어 현재까지도 그 직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챈드라 치즈보로와 브렌다 무어헤드는 1979년 60야드(54.86m) 경주에서 각각 1위와 2위를 차지한 뒤 나이키 육상 뉴스레터의 한 면을 장식했습니다.
변화의 주역, 타이거벨스
짐 크로법(공공장소에서 흑인과 백인의 분리를 규정한 법)이 시행되던 미국 남부에서 성인으로 자란 타이거벨스는 교육을 통해 사회 운동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타이거벨스는 미국 특유의 편견을 직접, 그리고 자주 체감했습니다. 한 번은 버스 운전사가 중요한 예선이 열리는 텍사스주 애빌린까지 운전하길 거부한 적도 있었고, 뉴욕 주와 테네시주 사이에 흑인을 태우는 교통수단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 매디슨 스퀘어 가든까지 22시간 동안 쉬지 않고 운전해야 했던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타이거벨스는 모든 차별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이 당당한 모습으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머쥐었습니다.
타이거벨스가 경쟁 상대를 압도했다는 사실도 중요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승리했는지도 중요합니다. 타이거벨스는 다채로운 워밍업과 최첨단 스파이크화, 섬세하게 다듬은 헤어와 메이크업으로 경기마다 눈길을 사로잡는 존재감을 보여주었습니다.
치즈보로는 “사람들은 플로렌스 그리피스 조이너가 풀 메이크업을 하고 달린 첫 선수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우리가 먼저였죠!”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많은 주목을 받았어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멋지게 차려입은 여성들이 나이키 백을 팔에 걸치고 나타나면 사람들은 한 걸음 물러나 감탄하며 지켜보았죠.”
타이거벨스가 중요시한 미적 감각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선례를 남겼습니다.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 와이오미아 타이어스는 100미터 경주에서 금메달을 차지했습니다. 1968년에도 금메달을 획득한 그녀는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국제 대회에서 남녀 통틀어 두 번의 금메달을 따낸 최초의 선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와이오미아의 승리는 경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날 그녀는 팀에서 의무적으로 착용하는 하얀색 쇼츠를 어두운 네이비 컬러의 쇼츠로 갈아입어 간접적인 방식으로 저항의 뜻을 밝혔습니다. 이 사건은 타이거벨스의 유산과 미학이 정치적인 행동으로 이어진 순간이었죠.
타이어스는 2021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어떠한 영광을 바라고 한 일이 아닙니다. 한 개인 그리고 한 명의 인간으로서, 이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여성, 특히 흑인 여성이 어떤 취급을 받는지 저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고 싶었죠.”라고 밝혔습니다.
1964년 10월 28일, TSU 캠퍼스로 돌아온 와이오미아 타이어스와 에디스 맥과이어 듀발
타이어스가 100m 경주에서 우승한 이틀 후, 존 칼로스와 토미 스미스는 시상대에서 검은 장갑을 낀 주먹을 들어 올리며 인권 운동을 상징하는 유명한 세리머니를 보여줬습니다. 타이어스는 칼로스와 스미스의 행동에 본인이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부인했지만, 며칠 후 4x100m 경주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 연대의 제스처로 스미스와 칼로스에게 메달을 헌정했습니다.
이 국제 대회에서의 경험을 통해 타이거벨스는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되었습니다. 윌리 화이트는 “올림픽은 제게 진짜 세계를 보여주었습니다. 첫 번째 올림픽 전에 저는 세상이 차별과 폭력으로 가득하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1956년 이후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라고 말했습니다.
밝은 미래
타이틀 나인(성차별 금지법) 시대로 접어들었음에도 타이거벨스의 영향력을 아는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했습니다. 그럼에도 이 여성들은 육상계를 새롭게 정의했으며 계속해서 대학 챔피언십을 휩쓸고 국제 육상 대회에 선수들을 내보냈습니다. 매 패그스 스타, 윌마 루돌프, 와이오미아 타이어스, 챈드라 치즈보로, 에디스 맥과이어 듀발, 윌리 화이트, 마델린 매닝 밈스, 마사 왓슨 등 타이거벨스 출신 중 여덟 명이 미국 육상 명예의 전당에 올랐습니다.
오른쪽부터 왼쪽으로: 매 패그스 스타, 챈드라 치즈보로, 에디스 맥과이어, 캐시 맥밀란, 헬렌 블레이크, 브렌다 무어헤드, 윌마 루돌프, 신시아 톰슨
타이거벨스와 함께한 역사를 기념하기 위해 나이키는 테네시주 멤피스의 국립 인권 박물관에서 타이거벨스를 위한 대규모 전시회를 개최했습니다. 전시는 트랙 스파이크화별로 구성되어 있으며, 1978년 6월 미국 AAU 육상 챔피언십에서 타이거벨스가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을 담은 사진을 재현했습니다. 사진은 타이거벨스의 유산을 오래도록 선명히 보존하기 위해 엄선된 소재와 규모로 제작됐습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어려운 일을 마주했을 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또 어떤 방법으로 이뤄낼 것인지 판단하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이 행동하는 모습을 통해 새로운 영감을 받게 됩니다.”
애나 코크렐, 올림픽 허들 선수 겸 활동가
나이키는 테네시주 멤피의 국립 인권 박물관과 협력하여 타이거벨스를 기념하는 전시를 주관했습니다.
올림픽 허들 선수이자 활동가인 안나 코크렐은 자신의 세대가 풍부한 유산의 혜택을 직접적으로 누리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육상계에 만들어낸 변화와 세계에서 미국을 대표하던 모습, 그리고 끊임없이 커뮤니티에 환원하려는 노력은 제게 깊은 인상을 남겼어요. 역사를 돌아보면 어려운 일을 마주했을 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또 어떤 방법으로 이뤄낼 것인지 판단하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이 행동하는 모습을 통해 새로운 영감을 받게 됩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나이키는 지난 50년을 되돌아보며 타이거벨스의 이야기가 우리의 역사는 물론, 미국 스포츠 역사의 측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데비이스는 “윌마 루돌프뿐만 아니라 여러 위대한 여성의 유산이 남겨진 학교 출신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우리의 마음가짐이 달라져요. 그들이 새로운 길을 열어준 덕분에 우리는 순조롭게 달릴 수 있었죠.”라고 말합니다.